끈질긴 미련과 전략적 기다림 사이
미련을 놓지 못하는 브랜드의 철학적 자기 변호.

가끔은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끈질긴 미련에 사로잡혀 있곤 합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는데,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
마치 끝난 관계에 매달려 '사실은 무언가 사정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오해가 풀려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기분과 비슷해요.
혹은, "그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탓에 실패했지만, 다시 한 번 해볼 수 있다면 다를거야."라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도 연결지어 집니다.
흔히 사람들은 미련은 백해무익한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과거에 얽매여 새로운 시작을 방해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라며.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모든 미련이 단지 어리석고 무가치한 걸까요?
유독 길게 기대하고, 머무르고, 끈질기게 버티는 편입니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낭비한 시간만큼 얻은 것도 분명 있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래도 궁금은 합니다. '미련을 칼같이 끊어내었더라면 더 나은 삶의 궤적을 그릴 수 있었을까...?' 라는, 다시 할 수 없는 선택에 대한 또 다른 미련이 생겨나는 것이죠.
미련의 본질은 어쩌면 단순히 불확실성일지 모르겠습니다. 감당해볼만한 리스크(risk)일 수도 있잖습니까. 지금은 무의미하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시간이 흐른 뒤엔 미련 덕분에 놓치지 않은 무언가가 내 삶에 커다란 보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테니까요.
역설적이지만 미련이라는 감정은 또한 가장 인간적인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하는 도전의 씨앗이기도 한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결론을 내리지 않고, 시간의 힘을 믿으며 기다리고 싶은 마음. 운명이 보상을 허락하는 '때'를 기다리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 미련을 지키고 합리화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하게 합니다.
브랜딩을 할때 이런 미련과 비슷한 상황을 자주 겪게 됩니다. 어떤 아이디어나 콘셉트가 초기에는 이해받지 못하고 무시당할 때, 몸을 갈아넣어 만든 콘텐츠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할 때 등이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다리고 버텨야 할 때, 미련은 백해무익하다며 포기해 버리고 다른 시도로 넘어간다면?
물론 기다림이 무조건적인 집착이나 고집이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신중하게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기다린다면 오히려 큰 기회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많이 겪었습니다.
미 영주권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그랬어요. 그냥 포기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은 때에도 무리해서 버티고 재도전을 한 결과, 당시 손해보았다 생각한 것들을 복리로 보상받았습니다.
중요한 건, 기다림의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미련이 막연한 집착인지, 정말로 가능성이 있는 일인지 계속해서 자문해 봐야 해요. 그리고 미련을 붙들고 있는 것을 택했을 때와 내려놓았을 때의 기회 비용도 비교해 봐야겠죠.
미련을 차마 놓지는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엔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일이 없다면, 일단은 방향을 틀되 여지를 남겨놓거나, 계속 버티면서 플랜 B를 만들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등의 옵션을 따져보는 것이 합리적인 수순입니다.
버티고 한 번 더 도전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샛길로 빠지지 않고 목적만을 향해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뾰족한 전략과 굳은 의지가 필수입니다.
명확한 비전과 신념, 전략적 판단을 기반으로 한 기다림이라면, 분명히 브랜드의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발적 보상은 그 누구도 시기와 정도를 예측하고 보장할 수 없지만, 가치는 반드시 정직하게 축적됩니다.
어쩌면 저는 미련을 어쩌지 못하고 버티다 이루는 성취에 중독된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림이 어딘가로 저를 이끌어 줄 거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편하게 잘 닦인 길을 마다하고 가시밭길로 향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