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만드는 새로운 직업: 감정을 기획하는 맥락 설계자
반복 생성만으로는 부족하다—AI 콘텐츠에 감동을 불어넣는 인간의 역할
요즘 우리가 보는 AI 이미지와 영상들, 참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죠. 고작 2~3년 동안에 이렇게 놀라운 발전이라니!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갈수록 감동을 느끼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눈은 즐겁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달까요.
"우와 이게 되다니!!" 하며 놀랄 시점도 좀 지나서, 처음에는 뭐가 생성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는데 이젠 헐리우드 영화 수준으로 뽑혀도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아~ 또 그럴싸한 멋진 비주얼이 탄생했구나!" 이 정도? 기대에 좀 못 미쳐도, "뭐 다음 달에 업데이트 되겠지." 라며 기다릴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주된 이유는 장인정신(craftmanship)의 부재 때문이더라고요.
AI 프롬프트를 백 번, 천 번 바꿔가며 재생성을 시키는 과정도 시간이 꽤 소요되고 새로운 의미의 창작의 고통을 분명 수반하지만, 생성 과정 속에 인간적인 무게가 실리지 못한다는 점은 콘텐츠의 예술적 감동지수(emotional impact)에 꽤나 큰 페널티입니다.
반면 화가가 붓질을 수없이 겹쳐가며 작품을 완성할 때는 그 사이사이에 작가의 망설임과 결단, 그리고 살아온 세월의 숨결이 스며들고, 이 차이가 감동의 무게를 만들어냅니다.
감동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예술은 단순히 완성된 결과물에서가 아니라, 과정 사이사이의 간극, 오랜 노력과 기술 연마를 통한 ‘장인정신’에서 탄생합니다. 붓터치 사이의 공백,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운,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 바로 그곳에 인간의 사유와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모방해도, 관객 입장에서 AI 작품에서는 그 “노력의 무게”나 인간적 고뇌의 흔적을 느낄 수 없고, 이는 작품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 심리 실험에서 동일한 그림도 “AI가 그렸다”고 하면 “인간이 그렸다”고 소개했을 때보다 덜 아름답고 덜 의미있게 평가되는 현상이 확인되었습니다. 심지어 참가자들은 AI가 그렸다고 믿으면 작품에 진심이 담긴 노력(Effort)이 적게 담겨 있을 것이라 간주했고, 이것이 호감도 평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즉, 관객들은 창작 과정의 인간적 노력과 진정성이 느껴질 때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맥락이 엮어내는 감정선
인간적 노력과 진정성은 무형의 가치입니다. 유형의 증거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위의 실험도 결국 관객에게 참과 거짓을 말하고 반응을 보는 실험이였죠. "이건 인간이 그렸다"고 하면 관객은 믿어버리게 되고 그림의 가치가 즉각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윤리적 관점에서, 어떻게 그림이 만들어졌는지를 속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거짓없이 AI 그림에도 가치를 올리는 혼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AI가 만든 결과물이 금세 소비되고 잊히는 이유는, 개별적으로는 화려하고 뛰어나지만 맥락과 서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감동은 언제나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태어납니다. 선형적이든 비선형적이든, 맥락이 촘촘히 엮여나갈 때 우리는 그 여정 속에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무언가에 가슴이 뭉클해지곤 하죠.
AI 시대에도 결국 필요한 건 "맥락을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감정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AI 활용 이전의 서사에 쓰이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할 것 입니다. 관객의 머리 속에 있는 "장인정신"은 더 이상 가치의 맥락이 되지 못하니까요.
어떻게 감동을 회복할까
AI 창작 콘텐츠에 맥락을 설계하는 데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창작 과정의 가치를 높이는 맥락 설계
과거에는 누구나 상상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노력"이 이 부분을 디폴트로 책임졌다면, AI 시대에는 좀 더 직관적인 설득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Based on a True Story)" 같은 문구를 초반에 띄우는 것이죠. 이야기가 "진짜"라는 점에서 몰입도를 유지하고 감정선을 살릴 수 있습니다. "실제 고증된 역사 속 건물들을 재현했습니다" 같은 문구도 같은 이유로 도움이 될 것이고요. 또는 현재 사회적 이슈나 트렌드에 편승하는 것으로 이미 관객이 알고 있는 서사의 확장이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2) 창작물 감상의 몰입도를 높이는 맥락 설계
초반 Hook이 없는 AI 콘텐츠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Hook은 철저히 인간적인 요소를 담은 감정 트리거로 쓰여야 합니다. 호기심이든, 공포든, 놀라움이든, 뭐든 좋습니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그 후 최대한 연속성 있는 이야기 구조 안에서, 관객이 배경과 전개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며 감정선을 따라가고 몰입이 깨지지 않게끔 도와야 합니다. 이런 설계 없이는 이제 아무도 로마의 콜로세움을 정밀하게 재현한 장면이나 초현실적 우주 세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장면같은 것에 예전처럼 감동하지 못합니다.
3) 개인화를 통한 맞춤 맥락 설계
AI의 강점인 테이터 분석 능력을 활용해 개인별로 맞춤 감동 증폭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의 취향과 실시간 감정에 적합한 개인화된 서사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개인이 직접 참여해 서사를 선택해가며 콘텐츠를 진행하게 하면 (Interactive narrative) 새로운 의미의 "장인 정신"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관객이 직접 AI 콘텐츠 사이사이 간극에 사유와 감정을 겹쳐넣는 맥락 설계를 하는 셈이니까요.
결국, 인간의 사유가 핵심
저는 확신합니다. 감동의 깊이를 높이는 열쇠는 기계나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포맷과 수단을 쓰는 창작품에 우리의 사유와 감정이 어디에 어떻게 스며들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요. AI가 아무리 수백만 번 재생성을 반복해도, 결국 사람의 흔적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 순간에만 진정한 울림이 태어날 테니까요. 그 감정선과 맥락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인간입니다.